평범한 손님이 모바일 포스를 만든 이유, CEO 준기님의 이야기 - Part.1

People

페이히어 성장 스토리의 주인공, 박준기 대표님을 소개합니다.

 

최근 시리즈 B 투자 유치 등 여러 좋은 소식 덕분에 많은 분들이 페이히어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페이히어의 설립 배경, 일하는 방식 등 회사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늘어나고 있는데요.

 

그래서 페이히어 성장 스토리의 주인공, 대표이사 준기님을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페이히어, 어떤 회사인가요?”

 

 

Part 1. Past

 

페이히어는 3~4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모바일 포스라는 창업 아이템은 한순간에 번쩍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과거 경험들이 지금의 생각과 가치관을 형성하듯이, 준기님의 과거 경험들이 지금의 페이히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간을 거슬러 15년 전의 준기님에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준기님, 블로그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매장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있는 페이히어의 대표, 박준기입니다.

 

 

 

Q. 준기님의 학창 시절, 사회 초년생 시절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창업을 꿈꾸셨나요?

 

사실 창업을 어렸을 때부터 꿈꾼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싶었고, 제가 정의한 문제를 직접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학창 시절, 저는 여느 학생들처럼 공부가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걸 왜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아요. 공부도 결국 문제를 푸는 과정인데, 저는 남들이 시켜서 하는 것보다는, 제가 정의한 문제를 직접 풀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대 초반 군대에 있으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항상 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문자로 친구들과 연락하고 싸이월드를 사용했었는데, 전역할 즈음에는 사람들이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쓰고 있었어요. 대형 IT 회사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시기에 크고 작은 변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내가 만든 제품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IT 회사에서 기획자 역할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IT 벤처 창업동아리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가 정의한 문제를 풀겠다는 목표의 최종 결과는 창업이긴 했지만, IT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하는 것이 제 꿈을 이루기 위한 첫 스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창업동아리 임원 시절의 준기님

 

실제로 동아리 활동을 통해 다양한 문제를 직접 풀어가는 과정에서 큰 재미를 느꼈어요.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문제보다 제가 정의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만의 프로덕트’를 만들어야 하고 결국 ‘창업이 답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Q. 개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제가 정의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프로덕트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발이 필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이디어는 누구나 낼 수 있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건 개발자였거든요. 하지만 해커톤을 참여하면서 항상 개발자와 부딪히는 부분이 있었어요. “이거 해보자”라고 말했을 때 개발자 친구들은 어렵다고 포기한 적이 많았어요.

 

주말마다  사이드 프로젝트와 해커톤을 참여하셨던 준기님

 

‘열심히 하면 되는데 왜 시작부터 포기하지?’라는 생각에 제가 직접 개발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경영학과로 졸업을 앞둔 4학년 1학기, 컴퓨터 공학을 복수 전공하기로 한 거죠. 주변에서 극구 말렸지만 ‘내가 몰입해서 열심히 하면 잘하지 않을까?’ 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2년 동안 죽기 살기로 했던 것 같아요. 그 경험을 통해서도 목표는 항상 높게 잡아야 하고, 열심히 하면 결국에는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됐어요.



Q. 어렸을 때부터 창업을 꿈꾸셨는데 졸업 후 바로 시작하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회사에서 경력을 쌓으셨어요. 왜 페이히어까지 기다렸나요? ‘좀 더 빨리 시작할걸’이라는 생각을 하셨던 적이 있었나요?

 

기다렸기 보다는 제 스스로를 검증하는 과정이 컸던 것 같아요. 우선 창업 동아리를 하면서 ‘절실함이 없으면 안 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프로덕트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섣불리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졸업 직후에는 문제를 푸는 방식 자체를 몰랐어요. IT 회사만의 문제 해결 및 접근 방식이 있는데, 회사 경험이 없다 보니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회사에 다녀보고 회사가 어떻게 문제를 푸는지 배워야겠다는 관점이었어요.

 

개발자로서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첫 회사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코딩만 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았어요.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개발 관리 업무보다는 실제 코딩을 통해 개발 역량을 끌어올리고 싶었거든요. 주말에도 사이드 프로젝트와 해커톤을 참여하며 쉬지 않고 코딩을 했고, 개발 역량을 키우기 위한 온갖 노력은 다했던 것 같아요.

 

개발자 시절의 준기님

 

그렇게 저의 첫 커리어를 쌓았던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죠. 물론 개발 측면에서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안정적인 회사이다 보니 저도 회사에 물들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제 자신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다음 회사로 선택하였고 스타트업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두 회사에 다니면서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고, 30살이 되고 나서 꿈꿔왔던 도전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치고는 오래 걸리긴 했지만, 섣불리 시작하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저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문제를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빨리 시작했어도 잘 됐을 거라는 보장은 없던 것 같아요.



Q. 많고 많은 비즈니스 모델 중 모바일 포스를 선택하고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작하신 걸까요? 많은 유망 산업 중 핀테크 산업에 뛰어든 이유도 궁금합니다.

 

사실 핀테크의 산업의 가치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페이히어를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가 정의한 문제를 풀고 싶었고, 제가 풀어야 할 문제의 산업군이 핀테크였을 뿐이죠.

 

페이히어 창업 직전인 2019년, 정부에서 제로페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제로페이 상품권을 구매해서 결제 시 10%를 할인해 준다는 뉴스를 보고 저도 서둘러 가맹점을 방문했어요. 포스 앞에서 “제로페이로 결제할게요”라고 말씀드렸는데 사장님은 포스가 아닌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셨어요.

 

 

‘왜 포스기가 있는데 휴대폰으로 결제하지? 사장님은 이걸 어떻게 관리하시지?’라는 의문이 생기면서 그때부터 다른 매장의 포스나 사장님의 사용하시는 서비스를 유심하게 관찰했어요. 심지어 어떤 매장에서는 적립, 예약 관리, 매장 관리를 태블릿 3대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운영하고 있었어요. 매장 운영 경험이 없는 저도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고, ‘결국 포스가 기능적으로 해주는 것이 뭐지?’라는 생각에 찾아본 결과, 포스 안에서 이런 기능을 연동하는 것 자체가 오래 걸리고 포스 업체 또한 사장님들의 Pain Point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렇다고 기술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어요. 사이렌 오더 등 포스 내 다양한 기능들이 이미 개발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페이히어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포스라는 것을 재정의해서 사장님들의 문제를 풀어야겠다.’ 미국에서는 이미 모바일 포스 시장이 활성화된 것을 보면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PC형 포스는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모바일 포스 시장에서 Zero to One을 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Q. 페이히어 초기 멤버들은 어떻게 구성했나요? 페이히어 초기 단계의 스토리가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창업을 해야겠다는 마인드셋이 인생의 기저에 깔려있어서 함께 문제를 풀어갈 사람을 찾는 것도 인생의 과제 중의 하나였어요. 학창 시절 그리고 사회 초년생 시절 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면서 ‘저 사람이랑 일해보고 싶다’, ‘저 친구랑 일하면 배울 것이 많겠다’라는 관점을 가지고 미래의 사업 파트너를 구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바일 포스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대학교 시절 함께 과제를 하며 동고동락한 컴퓨터 공학 동기를 직접 찾아가 설득했어요. 다행히 저의 비전에 대해 공감을 해주었고, 모바일 포스라는 꿈을 가지고 함께 프로덕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지만, 처음에는 매우 드라마틱 했습니다. 작은 사무실을 구하러 방방곡곡 돌아다녔고, 사비를 털어 외주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월급을 줬어요. 지원사업을 가까스로 구해 비용을 지불한 적도 있었죠.

 

페이히어 첫 사무실 (왼), 페이히어 두번째 사무실 (우)

 

그 후 프로덕트를 론칭하고 회사를 키워가면서 이전에 생각해 놓았던 구성원들을 하나둘씩 찾아가 설득했어요. 대학교 때부터 주말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개발자 친구, 밤을 새우며 해커톤을 같이 진행했던 창업 동아리 멤버, 개발에 진심이었던 회사 선배, 이전 회사에서 결제 시스템을 함께 만들었던 팀원 모두 지금 페이히어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백엔드 챕터 리드 만종님과 참여한 해커톤 (왼), CPO 사성님과의 프로젝트 종료 후 회식 (우)

 

Q. 페이히어 회사 명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저는 회사 이름은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B2C 기업의 다양한 간편 결제 서비스는 너무 많이 생기는 데도 불구하고, 그런 ‘페이’를 받아 줄 오프라인 상점은 없다고 느꼈죠. 우리는 모든 결제 방식을 받아줄 수 있는 모바일 포스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페이’와 ‘히어’를 합쳐 페이히어로 지었습니다.

 

 

Q. 페이히어 창업 과정에서 크게 실패해 본 경험이 있었나요?

 

아이러니하게도 크게 실패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은 실패는 지금도 매일 하고 있죠. 매일 매일이 반성의 연속이지만, 저는 크게 실패하기보다는 작게 쪼개서 실패하는 것을 추구해요. 린 스타트업 정신을 가지고 빠르게 실행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 페이히어의 일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2019년, 페이히어 프로덕트가 나오기 전에도 랜딩 페이지를 만들고 사전 신청자를 모집했어요. 하루에 3만 원이라는 적은 비용으로 20일 동안 광고를 운영하면서 시장에 반응이 있는지 매일 매일 확인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사전 신청을 통해 30~40명 정도 모았던 기억이 있네요.



Q. 페이히어라는 회사, 그리고 비즈니스 아이템이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던 때가 언제인가요?

 

사실 지금도 페이히어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다고 느꼈던 적은 있어요. 2019년 12월, 랜딩 페이지를 만들고 사전 신청자를 모집하던 중, 어느 사장님께 전화를 받게 됐어요. 1월에 와인바를 오픈할 예정인데, 페이히어를 쓰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죠. 하지만 당시에 프로덕트 자체가 없었고, 2월 중순부터 베타 시작이 가능해서 죄송하지만 어려울 것 같다고 전달드렸어요.

 

“그럼 저희가 기다릴게요.”라고 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시면서 페이히어를 꼭 사용하고 싶다고 강조하셨어요. 일단 오픈 일정을 지키는 게 우선이니 결제만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드렸는데 그걸 사용하면서 2월까지 끝까지 기다려 주셨어요. 결국 와인 바는 저희 첫 가맹점이 되었고, 지금까지 페이히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페이히어 첫 가맹점, 아페로

 

그때 가장 큰 뿌듯함을 느꼈고, ‘내가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만든 프로덕트에 대한 시장 반응을 직접 목격하면서 제가 풀고자 하는 문제의 타당성과 필요성을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Q. 준기님을 오싹하게 만든 사건사고가 있다면?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배움을 얻었나요?

 

2021년 9월 14일, iOS 전면 장애가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사용하던 보안 프로그램 업체가 저희에게 공지 없이 프로그램을 바꿔 버리는 바람에 결제가 먹통이 되어버렸던 적이 있었어요. 그 전에도 에러나 버그는 있었지만, 서비스가 2시간 동안 부분적인 서비스 사용이 불가했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2천 개가 넘는 채팅창이 동시에 열려있었고, 전화기는 불통이었어요. 저녁 5시 때 사건이 터졌는데, 상황 수습이 9시쯤 끝났어요. 4시간 동안 숨 막히는 마라톤 레이스를 뛰고 온 느낌이었습니다.

 

사건 수습 후, 사장님들에게 제일 먼저 사과를 드렸어요. 당시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는데, 이러한 불상사로 인해 손해를 끼쳐 죄송한 마음이 가장 컸거든요.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처 방안을 전달해 드렸어요. 제 마음이 와 닿았는지, 정말 다행히도 많은 사장님들이 페이히어를 계속 사용해 주셨고,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말씀을 전달해 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당시 모든 사장님께 전달드린 사과문

 

그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정신이 아찔하지만,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전에도 장애 발생에 대한 준비가 전무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스템과 체계를 장애가 발생하지 않는 구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긴급 결제 앱을 개별적으로 개발하고 포스 이용이 제한되는 즉시 알림톡을 전송하도록 설계했어요. 결과적으로 그 과정을 통해, 저뿐만 아닌 페이히어 구성원들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모바일 포스라고 하면 누군가 시도해봤을 법도 한데, 페이히어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모바일 포스는 페이히어 전에도 한국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어요. 2010년대 초반부터 휴대폰으로 연결하는 동글을 포함해서 다양한 회사들이 시도했었던 사업 아이템이었죠. 하지만 당시에는 타이밍도 좋지 않았고, 매장 운영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새로운 결제 단말기를 만든다는 관점밖에 없었어요. 문제에 접근했던 방식 자체가 잘못됐었죠.

 

2020년 초반, 첫 투자를 받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이거 옛날에 했는데, 다 실패했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전달하고 설득했어요.

 

 

“그때랑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당시 시장의 플레이어들은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결제 단말기를 팔기 위한 한 가지의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스라는 개념 자체를 바꾸려고 합니다.”

 

그런 제 말을 믿어줬던 곳이 페이히어의 첫 투자자였던 김기사랩의 대표님이었어요. 김기사도 자동차에 박혀있던 빌트인 내비게이션을, 모바일 환경에 맞춰 개발하여 혁신을 이뤄냈던 스타트업이었어요. 당시 “모바일에서 내비게이션을 왜 사용해?” 라는 다수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 있었죠.

 

저는 결국 성공할 수 있는 프로덕트의 조건은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1. 불편함이 큰 시장(큰 수요)

  2. 제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의 능력(좋은 공급)

 

페이히어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비결도 해당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원하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많은 창업자분들과는 다르게 저는 제가 사용하지 않을 프로덕트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그러다보니 프로덕트를 사용하는 사람만을 포커싱하고 만들 수 있었고, 오히려 시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덕분에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To be continued..

준기님의 다이나믹했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페이히어의 배경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2부에서는 과거 보다는 현재, 그리고 미래의 페이히어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